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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대호, <한국 정치사상 100년의 난제-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 극복>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1.27
첨부파일0
조회수
1079
내용
<좋은정치포럼>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12

* 우리 학회 회원 강정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한 논평을 우연히 발견하여 펌했습니다. 정말 강호에 고수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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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토론회 참석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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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는 유난히 공공 정책(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사회디자인)관련 토론회가 많았다.

표방한 업이 사회디자인이라, 관심 있는 토론회에는 시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참석하려고 하였다. 11월 27일(목)에는 오후 1시에는 연세대 새천년 기념관에서 열린, [한반도 선진화 재단과 한국미래학회]가 공동주최한 <한국의 이념논쟁>이라는 연속 기획 심포지엄의 첫 번째 토론회에 참석했다. 주제는 ‘한국의 보수를 말한다’이었다. 중간에 나와 오후 3시경에는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정책연구회](김기원, 김상조, 홍종학, 유종일, 전성인, 이근 등 한국 진보/개혁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주제는 ‘위기의 한국경제:정책대응과 구조개혁’이었다. 약간 늦게 간 토론회였지만 거의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11월 29일(토)에는 [기독교 통일학회] 6차 정기학술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제는 <성경 ․ 토지 ․ 통일>이었고 총 4개의 주제가 발표되었다. 내가 토론한 논문은 ‘토지와 정의’였다. (토론문도 썼다) 당초는 토론회 끝나고 나서 참석하고픈 강연회가 하나 더 있었으나 시간이 안 맞아 결국 뒤풀이 정도에만 참석했다. 11월30일(일)에도 점심 즈음에 가치, 비전, 이념, 정책을 가지고 밀도 있게 토론하는 소규모 모임에 참석했다.

사회디자인을 업으로 하는지라 출품된 ‘노작’(상품?)으로부터 배우는 바, 느끼는 바가 얼마나 많겠는가! 진중권, 김호기, 오세훈, 심상정이 풀었던 ‘썰’을 소재로 www.goodpol.net에 썼던 비평 글과 비슷한 글을 각각의 논문 또는 토론회에 대해 다 쓴다면,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부족 할 것 이다. 그래서 딱 하나 [한반도 선진화 재단]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강정인 교수 논문 ‘한국 보수의 비교사적 특징:서구와의 비교’를 좀 음미해 볼까 한다. 시간이 나면 한 두 개 정도는 더 음미해 볼 용의도 있다.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전에 세 토론회의 참석인원만 비교해 보면, [한반도 선진화 재단] 토론회는 시작하고 나서 1시간이 지났지만 전체 참석자가 20명을 넘지 않는 것 같았다. 최근에 지은 강당이라서 시설과 좌석이 좋았는데 대부분 텅텅 비어있었다. 발표자, 토론자, 기념사(김진현), 개회사(박세일)를 할 사람이 무려 13명이었다. 한국 보수 중에서 가장 내공 있고, 품격 있는 담론을 구사한다고 알려진 ‘한반도 선진화 재단’이 주최는 토론회(사상이념 상품 전시회) 임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소비자가 너무 없었다. 인터넷 언론이 생방송을 하지도 않았고, 젊은 사람은 강연장 앞에서 명함 받고 방명록 관리하는 사람 두 명 정도 밖에 안보였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집에 실린 논문들을 읽어보니 한국 보수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 법한 좋은 논문들이 많았다. 회원 수 10만명이 넘는다는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애’들, 원조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친구들, 회원수가 150만 명이 넘었다는 ‘선진국민연대’(?), 보수의 동향을 파악하고 벤치마킹을 하려는 진보 동네 사람들 등등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의아했다. 박세일 교수와 [한반도 선진화 재단]이 권력 핵심과 거리가 엄청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경제정책연구회]에는 16시~17시경 세어 보니 참석자, 관련자 포함 대략 40명을 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30대가 눈에 많이 띄고, 한국 사회의 고령화를 반영하는 지 60대 이상이 되어 보이는 분들이 드물지 않았다. 인터넷 언론이 중계를 하느라 방송용 카메라가 서너 대 돌아갔다.

[기독교 통일학회] 토론회는 가장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자가 70~80명이 되어 보였다. 강의실이 꽉 찼다. 발제 한 두 개 듣고 자료집만 챙겨서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었다. 70대 이상 고령층부터 20대까지, 남녀노소가 고루 분포하는 것 같았다. 큰 교회에서 조직 동원한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방송용 카메라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2004년까지 한국 정치에 지각 변동을 초래한 주요한 에너지원의 하나가 1970~80년대에 걸쳐 정의감에 불타는 수많은 청년들이 후미진 골방과 서클룸에서 공공 담론(한 때는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을 가지고 씨름한 풍토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개혁적인 종교 동네서 마그마처럼 들끓는 건강한 정치적 에너지가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까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은 대체로 헨리조지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며, 토지는 사회화(공공임대제)되어야 하며, 특히 통일 이후 북한만이라도 체제 제도 설계시에 남한 같은 토지 사유제를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대해 공감하는 것 같았다. 헌재의 토지공개념 3법 폐지와 종부세 사실상 무력화 시도에 대해서도 반감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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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몇몇 토론회에서 접한 좋은 논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강정인 교수의 논문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 이 논문이 한국 사회를 거시적으로 보는 훌륭한 창 내지 안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안경 자체는 좋음에도 불구하고 강정인이 그 성능/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이 좋은 안경은 곧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일국사적) 시간대의 교차와 불일치’로 한국 정치사상을 조망하는 시각이다. 강정인은 이 시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 (simultaneity of the non-simultaneous)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따라서 강정인에게는 주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고, 설명을 위한 보조 개념(시각)이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주는 우리가 흔히 써 온 ‘압축성(압축적 근대화)’이라는 개념과 거의 같기에 그리 새로운 통찰력을 주지 못하지만, 설명 보조 개념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반도 2200년 왕조(문명)의 흥망사를 세계(때론 동아시아) 패권국의 도전에 대한 응전, 혹은 해양 세력 vs 대륙 세력의 각축전이라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시각으로 풀이한 배기찬(‘코리아생존의 기로에 서다’ 저자, 전 노대통령 동북아비서관)의 시각처럼 새로운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라는 시각이나 배기찬의 시각은 한반도의 지정. 지경학적 조건과 문명 수준상, 세계(동아시아) 패권국이나 문명 중심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기에 이 도전에 대한 현명한 응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데서 핵심 메시지는 대동소이 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강정인이 주요하게 채택한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교양 차원에서라도 상세히 살펴보자. 강정인이 이 개념을 쓴 것은 ‘현대 한국 정치사상(사)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 ‘(서구 문명에 대한) 한국 정치체(政治體)의 주변성과 후발성에 대한 첨예한 인식과 철저한 해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최장집 교수 글에서 몇 번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평소 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강단 학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좀 얕고 일면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특히 (지난 대선 평가에서 보듯이) 진보신당 류의 주장을 약간 아카데믹하게 펼치는 것에 경악하였다. 그러다 보니 안 팔리는 헌옷 무게 달아서 공장 기름걸레용으로 넘기듯이 나도 이 개념을 내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하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정인 교수의 논문으로부터 처음으로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의 원조와 맥락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강정인은 이 개념=분석틀을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라는 분석틀이 복잡다단한 한국 현실과 한국 사상이념의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잘 포착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강정인 논문에 의하면,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은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인 블로흐(Ernst Bloch)가 나치 정권이 맹위를 떨치기 전인 1935년에 펴낸 <우리 시대의 유산(Erbschaft dieser Zeit, Heritage of Our Times)>이라는 저작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즘, 곧 ‘국가사회주의라는 진보적 명칭으로 출현한 반동적 극우 민족주의’의 대두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 이다. 블로흐는 이 개념을 ’일국 내에서 급속하게 형성된 자본주의적 구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사회문화적 구조 사이의 괴리 및 그 괴리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다.

‘블로흐에 따르면, 1918년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혁명이 부재한 상황에서 독일이 수행한 경제적․정치적 변형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덜 근본적이었기 때문에, 이질적이고 반동적인 사회 세력들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매우 허약한 부르주아지와 함께 나란히 병존했다. (중략) 근대사회의 경제적 합리화의 상황에서도 과거의 낡은 심성이 집요하게 존속하다는 데서 그 확실한 (문제의) 징후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낡은 심성을 소지한 계층들은 당대의 위기에 반응하면서 신성한 신화, 좌절된 기대, 비합리적인 설명에 사로잡혔으며, 나치는 전자본주의적 과거를 이상화하여 호소하면서 정권을 잡았다(Bloch 1991). 이처럼 독일․일본 등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견된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2차 대전 후 독립한 한국과 같은 신생독립국에서는 훨씬 더 격렬한 양상으로 출현했다’(<한국의 보수를 말한다>, p22~23)

강정인은 이 개념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문화적 지체(cultural lag)’ 또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엇갈림’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외에도 ’압축성‘ 혹은 ’압축적 근대화(산업화. 민주화)‘라는 표현도, 봉건 유제, 냉전의 잔재라는 표현도 그것을 포착한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자칫 사상이념이 ’장님코끼리 만지기‘식 분석에 근거 할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도 그것을 의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전혀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이 점은 강정인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정치적 발현은 블로흐가 설명한 독일과 같이 일국 차원에서 형성된 자본주의적 구조와 사회문화적 구조 사이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한 정치이념으로 신봉하고 부과하는 세계사적 시간대의 압도와 이를 받아들이고 적절히 운영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정치 문화를 결여하고 있었던 한국사적 시간대의 반발 및 충돌로 인해 초래되었다‘ (앞의 책, P23)

강정인은 '단명에 그친 제2공화국을 제외한다면 1987년 이전까지 한국의 헌법과 역대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와 반대되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통치였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보수주의의 핵심은 (표방하는 바와 달리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권위주의’라고 단언한다.(같은 책, p23) 그래서 ‘한국 정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실천된 이념이 아니라 표방된 이념으로 남아있었으며, 따라서 완성된 체제로서 보수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질서로서 장차 실현되어야 할 측면이 더 강했던 것이다.'(같은 책, p23~24)


한국 자유주의의 반동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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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은 세계사적 시간대에 따라 직수입된 한국 자유주의가 보수화(반동화) 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방정국에서 남한이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보수 세력인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등이 추진․추구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나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질서는 보수되어야 할 기존질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혁신적 또는 개혁적으로 장차 실현되어야 할 ‘진보적’ 성격을 지닌 질서였다. 지주—소작제가 광범위하게 온존된 전근대적 경제 질서는 자본주의적으로 장차 개조되어야 할 질서였고, 일본의 파시즘적인 식민지 정치 질서 역시 자유민주주의적으로 혁파되어야 할 질서였다. 이 점에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도 당대의 역사적 과제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좀 더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한국 사회를 혁신적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완성된 체제로서 보수되어야 할 기존 질서가 아니라 미래의 과제로서 장차 실현되어야 할 질서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해방정국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진보적인 잠재력을 띠고 있었지만, 지배이념으로 수용된 자유주의는 조숙하게 출현한 사회주의에 맞서 조기에 보수화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지배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자유주의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이념적 활력과 계급적 역량이 미비한 상태에서 자유주의보다 더 광범위한 호소력을 지닌 사회주의에 직면하게 되자, 사회주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거에 보수화, 반동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같은 책, p32)


한국 보수주의의 취약성, 허구성, 표리부동성을 지적한 강정인의 얘기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강정인의 견해 중 당시의 세계사적 시간대가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한 정치이념으로 신봉하고 부과’하던 시기라는 판단은 명백히 오류이다. 사실 1945~53년 기간, 한국(남한)에는 소련, 중국 대륙, 북한을 거쳐 밀물처럼 밀려오던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 혁명의 물결에 대한 방어 기지(반공의 전초기지)라는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미국의 전략이 압도적으로 강한 규정력으로 작용하였다. 1948년 불과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일본에서도 사회당이 집권하고, 독-소 전에서 소련의 승리를 계기로 동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서유럽에서 조차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정책이 맹위를 떨쳤다. 세계사적 시간대로 따진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가 압도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연히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은 여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헌헌법에 ‘사기업 노동자의 이익분배 균점권’과 ‘중요 산업의 국영 또는 공영화’ ‘천연자원 국유화’ ‘개인의 경제상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하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한다는 등의 조문을 넣었던 것이다. 또한 이승만은 당시 집권당이던 한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실상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가까운 토지개혁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좌파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기에(미국도 좌파 소리를 엄청나게 듣던 루스벨트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직수입한 헌법, 노동법 등 각종 법, 제도는 대단히 진보적이었다. 게다가 북한과 남한의 체제 경쟁도 치열했으니 오죽했을까?

요컨대 당시 한국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성장 발전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둘 다 선진 문명으로 여겨져서 충분한 토착화 노력과 시간을 거치지 않고, 경쟁적으로 수입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배기찬이 말한 거대한 규정력(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단선은 곧 사회주의/공산주의 세계 체제와 자유주의/민주주의 세계체제의 분단선이었다)과 국내 정치사회적인 역관계와 내전, 전쟁, 분단과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인해 둘 다 훨씬 심하게 변형을 겪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봉건과 식민의 잔재가 그득한 후진적 사회 구조와 정치 문화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수입된 자유민주주의는 변질되기 마련인데, ‘자유민주주의’자체를 ‘부르조아 민주주의’라 폄하하고 부정하는 좌파의 관념적 급진성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악성으로 변질되었다. 악성으로 변질된 자유민주주의는 1980~90년대 초반 세계사적 시간대에 맞지 않게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과 주체사상과 전투적 노동운동 등 시대착오적 사상과 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한국 정치사회 세력들의 관념적 급진성과 교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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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정인 논문에서 가장 의미 있게 보는 것은 세계사적 시간대와 일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로 인한, (한국과 일본에서의) 정치사회세력들의 ‘관념적 급진성’, ‘교조성’과 ‘이데올로기 비판의 조숙한 등장’이다.

‘서구에서처럼 여러 사상의 출현이 점진적․계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진보적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가 지배이념으로서 사회․정치적 개혁을 어느 정도 자유주의적 비전에 따라서 추진한 이후에 드러난 현실적 모순을 놓고 사회주의가 도전했기 때문에, 대립의 지점이 좀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처럼, 자유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정치공동체를 주조하기 이전에 도전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한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의 내재적인 가치나 논리적인 정합성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유주의를 그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공박하는 관념적 급진성과 교조성을 강하게 띠었다(같은 책, p33)

강정인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많은 사회주의적 운동세력이나 지식인들이 부르주아지 계급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한국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성찰을 외면한 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따라 한국의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서구적 맥락에 따라 규정한 후 이를 비판․배척하는 경우’를 들었다. 강정인은 계속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 경우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현실세계를 장악하지 못한 관념적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들의 대결은 현실성을 결여한 관념의 세계에서 상호 타협과 대화를 거부한 채, 훨씬 더 강한 반동성 또는 급진성 그리고 이것이 조합된 내용적 공허성과 교조적 격렬성을 띠고 분출된다.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적 대결 또는 1980년대 급진운동권에서 진행된 사상적 논쟁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같은 책, p33)

이데올로기 비판이 그 사회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한 채 서구의 역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곧 서구중심주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이 추구하는 진화의 목표는 ‘선진’ 유럽이었으므로, 거기서 사상을 평가하는 데서도 서양 콤플렉스와 진보 콤플렉스는 떼놓을 수 없게 결부되어 사상 상호간의 우열이, 일본의 지반에서 현실적으로 갖는 의미라는 관념보다는 흔히 서양사에서 그들 사상이 생겨난 시대의 선후(先後)에 의해 정해진다. …… 온갖 이데올로기를 일본의 현실이라는 장(場)에서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회적 문맥을 빼버린 채 사상의 역사적 진화나 발전을 도식화하는 것이었는데 ……(마루야마 1998, 76-79)(같은 책, p 34)


진보 100년의 고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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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 한반도 진보 혹은 좌파 세력은 한국사적 시간대(특히 역사 발전 단계와 정치사회적 역관계)를 무시하고 세계사적인(소련을 포함한 유럽적인) 시간대에 맞추려는 급진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예컨대 1928년 코민테른이 내린 '12월 테제' 실천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 테제의 조선 공산주의운동 관련 주요 방침은 '민족혁명운동에 계급성을 부여하고, 타협적인 민족개량주의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에 두고, '공장노동자와 빈농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민족개량주의나 여타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의 냉담성과 우유부단성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12월 테제‘의 방침에 따라 조선공산당이 해체되고, 공장노동자·빈농에 기반을 둔 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 및 혁명적 노동조합·농민조합 운동 등이 활발해졌던 반면, 만주와 일본의 조선공산당총국들이 해체되면서 중국·일본 공산당으로 각각 흡수되고, 민족통일전선조직이었던 신간회(新幹會)도 ’노동자·농민을 주체로 하는 조직으로의 개편'을 목표로 사실상 해체시켰다. 1945~53년에 일어난 수많은 비극적 유혈 충돌 역시 한국사의 시간대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자, 배기찬이 말한 거대한 규정력에 대한 무시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악성으로 변질된 한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 제기로 봐 줄 수도 있지만 어쨌든 1980~90년대 초반의 시대착오적 사상운동과 민중운동 역시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사적 시간대의 불일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한 소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다 과거사다. 문제는 지금 신자유주의를 주적으로 삼고,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를 모델로 하는 정책운동 역시 지난 100년에 걸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식민지 정치 세력내지 지식인의 악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국 진보는 여전히 사상이념의 오퍼상 전통을 탈피하지 못하여 북유럽 모델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미국의 합리성 핵심을 너무 간과한다. 한국 보수 역시 마찬가지로 오퍼상 전통을 탈피하지 못하여, 대처, 레이건의 핵심 컨셉(줄. 푸. 세)과 반공이데올로기를 결합하여 괴상한 라이트로 행세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연구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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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짙은 회의로 인한 무관심, 그리고 한국 보수 특유의 체제 위기(피해)의식과 천민성이 결합하여 제대로 된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제대로 된 법치주의, 제대로 된 자유주의는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주류 정치사회세력들에 의해서 진지하게 연구된 적이 없다.

독과점과 불공정거래에 단호하지 못하고, (금융 상품, 보험 약관 등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미흡한 소비자 보호 조치와 빈약한 소비자 정보, 허술한 금융 규제와 감독, 지나치게 강력한 독점권을 허용하는 각종 자격증 제도 등 한마디로 공정 경쟁과 패자부활전(Second chance society) 구현하는 법, 제도, 정책에 대한 무관심은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무관심의 증거이다. 엄청난 불로소득을 도심요지 부동산 소유자에게 선사하고, 제반 물가를 끌어올리는 토지 소유 제도와 임차인에게 불리한 상가 임대차 제도에 대한 무관심, 더 이상 정당성도 유효성도 없는 조세(감면)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토건족, 지방토호 등 소수에 의해 농단되는 재정, 공공부문에 대한 엉성한 감시. 통제, 사법고시를 통과한 엘리트에 의해 독점된 사법권력(헌재, 법원, 검찰 등),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과 수사권,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선거제도와 정당법, 부자 아니면 안정적으로 정치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자금법, 개혁 중의 개혁인 헌법 개혁에 대한 무관심 등은 제대로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의 증거이다. 이 모든 것은 사민주의와 상관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문제 제기 할 수 있다. 기득권자들의 서비스 경쟁을 촉진하고, 거둬야 될 세금을 제대로 걷고, 농단되는 재정 막고, 공공부문의 서비스 맨쉽만 제도적으로 개선해도 현재의 조세/사회보험료 부담 수준으로도 복지 재정을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다 훨씬 자유롭고 정의롭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강정인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가 단행한 민주적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담담하거나 인색’한 이유를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는 규범적 현실이었고 또한 (서구 민주국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실제적 현실이 규범적 현실에 수렴하게 되었을 때... (개혁 당시에는) 일시적인 관심과 지지를 표출하고 성취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개혁된 현실은 (곧바로)당연시’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일반국민들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민주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했다가 현실이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 또는 한국 정치현실이 서구 민주주의와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쉽게 절망과 냉소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민주화가 진행된 지 20년 정도뿐이 지나지 않았는데,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율이 선거를 거듭할수록 선진국(?) 수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같은 책, p26)

이것은 절반은 맞는 말 일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국 진보의 상당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미비, 다시말해 이들이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사회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민영화, 규제완화, 유연화, 작은 정부(소득 재분배 정책의 미비), 주주자본주의(?), (은행 중심이 아닌)금융시장 중심 금융시스템에 혐의를 돌린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원천 봉쇄하는 차원에서 경제사회 시스템 전체를 북유럽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절반의 이유는 압도적으로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자유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시장경제,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해석하지도 못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반시장적 선분양제를 유지하고, 분양가 자율화와 저금리의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법. 공교육에 시장원리가 전혀 흐르지 않아 저 품질 교육만 넘치는 상태로 특목고를 늘리면 특목고 열풍이 거세지는 법. 전임교수에게 밥이 그득 담긴 철밥통을 주면, 시간강사는 개밥 그릇은커녕, 손가락에 묻은 밥알이나 핥아먹는 법. 이렇듯 시장 실패의 배후에는 대개 경쟁(소비자선택권/심판권) 차단 장벽(이익 집단의 농간)과 정부의 규제, 감독의 실패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한국 진보의 상당수는 소비자 선택권/심판권 차단 장벽과 정부 실패에 대해서 무심하고 거의 자유와 경쟁 자체를 문제 삼는다. 과거에는 자유민주주의의 패악과 위선에 대해 사회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들이밀었듯이......

여전히 미국, 유럽, 일본의 정치 사회 세력들의 고민과 가치, 비전, 이념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필요하다. 벤치마킹할 것은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주된 연구 고민의 에너지는 한국 사회로 향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알아야 한다. 전 미국 대통령 클린턴도 성공하는 대통령의 비결로 ‘첫째,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들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더 번영된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국가경영 담론의 참고 문헌에 외국의 유명 학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속살을 말해주는 통계가 주르르 달려야 한다. 한국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 CT, MRI, X선, 혈액검사, 대소변 검사 자료 같은 통계들이 주르르 달려야 한다.


보수의 진화 발전 속도를 어떻게 따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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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 파일을 구하기 위해 ‘한반도 선진화 재단’ 홈피에 들어갔다가 최영기(前 한국노동연구원장, 얼마 전 참여정부 인사라고 물러났다)글 ‘금융위기 극복 위한 자유주의개혁과 과감한 사회투자전략(2008.12.1)’이 대문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상 깊은 내용은 이렇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OECD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새 정책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확산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정책그룹들은 각각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지나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수 진보 양쪽 모두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자유화개혁 과정을 OECD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동일시하여 이를 찬성 또는 반대하는 것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견 한국과 OECD 국가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개혁의 방향이 유사했고 그 후유증으로 사회통합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유사점은 거기까지다. OECD 선진국들이 주로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복지국가의 시장개입”을 줄이는 것이었다면, 한국의 경우에는 “개발국가(development state)의 시장개입”은 줄이지만 “복지국가의 개입”은 증대시켜야 하는 모순적 개혁이 필요하다. OECD 국가들의 사회통합 위기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줄이고 폐지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안전망의 결핍과 불충분성에 기인한다. 즉 자유주의적 개혁이 더 필요하듯이 사회투자적 사회정책의 강화도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차이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OECD 국가들의 개혁메뉴들을 잘못 벤치마킹할 수 있고 한국현실에 더 적합한 과감한 정책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그 중의 한 예가 정책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지나친 복지공포(welfare-phobia)다. 복지국가의 폐해(welfare disease)는 매우 서구적인 문제의식이다. 한국의 고민은 과감한 안전망투자와 능동적인 사회(정책)개혁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지금의 고용위기와 사회통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선진국들의 복지국가 실패(?)를 건너뛰고 바로 선진적인 시장경제로 진입이 가능할 것인가?‘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 나는 한국 보수의 대표 주자의 한 사람인 박세일의 문제의식이 최영기 같은 진보 내지 중도의 문제의식에 닿아있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 반대 담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진보가 과연 보수를 이길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진보는 지향해야 할 국가 모델자리에서 USSR을 지웠듯이 EUROPE과 Nordic(Scandinavia)과 USA를 지워야 한다. Look outer!가 아닌 inner!를 외쳐야 한다. Look East도 West도 아닌 Look Korea!를 외쳐야 한다. 내가 발디디고 있는, 대부분이 잘 안다고 착각하는 한국 사회를 자세히 뜯어보아야 한다. -끝-

##내가 최영기 전원장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 것은, 나는 진보와 보수 이익집단과 정치, 관료, 언론 등 노블레스들에 의해 왜곡된 상벌체계 정상화를 중심에 두고 과감한 사회투자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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